2026 봄 - 통권 125호
감속주의
『문화/과학』 제125호(봄호) 특집은 경제 회생과 성장을 중심에 둔 ‘가속주의적’ 사회 분위기를 잠시 가라앉히고, 여전히 강고한 근대주의적 성장 논리를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가치·이념적 대안으로서 ‘감속주의(decelerationism)’ 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좌우, 진보와 보수, 엘리트 계급과 일반 시민을 가릴 것 없이 서로 다른 목표와 욕망을 투사하면서, 첨단 기술을 통해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선도국가를 향한 염원이 오늘날 한국사회를 강고하게 지배하는 사회 정서가 됐다. 우리는 그 기저에 연결·속도·성장·경쟁·효율 등을 강요하는 ‘초가속 사회’의 열망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우리는 광적으로 깊어진 현실의 가속화 경향을 경계하며, 성찰 없는 사회의 질주가 낳을 파국을 우려한다. 이를 대신해 지속 가능한 삶의 리듬과 속도, 기술·인간·자연의 공생적 조율, 호혜와 우정의 새로운 생태사회의 급진 철학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감속주의는 기술을 매개로 한 성장 일변도의 가속주의에 맞서는 일종의 시민사회적 길항 논리로 제기된다. ‘감속’은 멈춤이 아니라 성장과 다른 리듬의 생성이며, 체제 전환의 논리다. 감속주의는 생태적 전환, 탈성장, 공동체적 시간, 타자와의 공존, 기술의 인간화 등 급진적 사유와 실천을 통해 ‘가속주의 세계관’을 근본에서 비판하고, 지속 가능한 느림과 호혜적 돌봄의 세계를 상상하는 새로운 정치 감각의 구성을 제안한다. 2026년을 여는 이번 특집은 기술과 자본의 속도 체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공존·호혜·돌봄의 감속적 사유를 통해 다가올 사회적 전환의 방향을 탐색하는 데 그 의의를 둔다.
- 21세기 초가속 K-사회 비판: 감속주의적 전환과 생명 리듬의 회복 / 이광석
- 성장 너머의 에너지전환과 감속의 정치 / 홍덕화
- 감속주의 도시: 다양한 몸들이 뒤섞이는 도시정의를 향하여 / 송은영
- AI 가속주의와 국가 자본주의 정신: ‘기술 선도국가’의 정책, 신화, 주체, 윤리의 생산 비판 / 김현준
- 붉은 구문론(Bloody Syntax) / 임태훈
- 감속을 ‘불구화’하기: 불구의 시간과 침대 행동주의 / 이한빛
- 가속화된 금융과 느린 폭력의 젠더 정치 / 김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