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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봄 - 통권 121호
내란, 광장정치
책임편집: 정원옥 · 전주희 · 정정훈 · 조윤희 편집위원
12‧3 내란 이후 전개된 광장정치는 그 자체로 거대한 이야깃거리이지만, 『문화/과학』편집위원회가 주목한 것은 주제는 광장정치를 주도하는 주체는 누구이며, 그 함의는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 12‧3 내란 이후 열린 광장에는 2030 청년,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이주민, 세입자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2030여성과 성소수자의 참여가 단연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다. ‘응원봉’ 문화정치로 대표되는 2030여성의 팬덤문화가 광장정치를 빛의 혁명으로 이끌었다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면서 ‘자유 발언’을 하는 집회문화를 만들어낸 것은 성소수자 운동의 축적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광장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2030여성, 성소수자를 비롯하여 12‧3 내란 이후 부상하는 주체를 중심으로 광장정치를 읽고 그 함의를 분석하였다.
한편, 12‧3 내란 이후 극우 대중운동 또한 광장과 거리를 중심으로 세력화되면서, 더는 무시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계엄을 지지하고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면서 극단주의, 혐오, 차별, 폭력을 선동하고 조장하는 극우 대중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집_내란, 광장정치
- 12‧3 계엄 국면에서 나타난 네 가지 폭력의 키워드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독재, 제노사이드, 극우, 파시즘 / 신진욱
- 내란죄: 12월 3일 쿠데타의 밤 / 이재승
- “광기의 지상권”: 윤석열 통치권력 체제의 정신분석 / 이동연
- ‘휀걸’과 ‘말벌’: 초대장에 응답‧연대하는 방식 / 정고은
- 무지개 색깔 동지들의 기억 투쟁 / 권창규
- 퀴어 민주주의를 위하여 / 정성조
- 여순에서 남태령까지, 손가락총의 폭력을 넘어: 역사와 언어로 보는 12‧3 비상계엄과 내란 정국 / 최성용
옥상의 시선
121호에서 신설된 꼭지인 <옥상의 시선>에는 나희덕 시인, 진은영 시인, 모순택 사진사를 모셨다. 두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읽는 광장의 이야기, 사진사의 시선에 포착된 광장 안과 바깥의 풍경을 전한다.
특집_내란, 광장정치
총론으로 실린 신진욱의 글 「12‧3 계엄 국면에 나타난 네 가지 폭력의 키워드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독재, 제노사이드, 극우, 파시즘」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부터 2025년 현재까지 지속되는 압축적 시간을 ‘12·3 계엄 국면’으로 규정하고, 이 시간대를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취약성과 그러한 취약성에 배태된 파시즘적 가능성을 살펴본다. 이재승은 「내란죄: 12월 3일 쿠데타의 밤」에서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계엄령 자체가 “문명국가의 법제라고 할 수 없다”라면서 계엄법령의 개혁을 주장한다. 그는 국가가 독점한 폭력으로서 군대의 민주적 제어, 군인의 ‘제복 입은 시민’화라는 오래된 과제를 결론으로 제시한다. 이동연의 글 「“광기의 지상권”: 윤석열 통치권력 체제의 정신분석」은 오인, 망상, 결핍,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부인 등 다양한 정신분석 개념을 활용하여 윤석열의 통치권력을 분석한 것이다. 그는 마녀의 예언을 주술로 오인하면서 파국적 운명을 내재화한 맥베스 부부와 윤석열 부부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점을 글의 시작과 결론에서 강조한다. 정고은의 글 「‘휀걸’과 ‘말벌’: 초대장에 응답‧연대하는 방식」은 ‘휀걸’의 관점에서 케이팝 산업과 아이돌 그리고 팬덤을 둘러싼 정치의 역동적인 현장을 그려낸다. 또한, 광장에는 언제나 이미 여성이 있었다를 선언하는 것을 넘어, 여성이 어떤 기억과 사건을 거친 정치적 주체로서 광장에 있었는가를 저자 자신의 기억과 사건을 경유하여 정리한다. 권창규는 「무지개 색깔 동지들의 기억투쟁」에서 가장 뜨거웠던 광장의 ‘인민들’과 저자 자신의 참여를 녹여내 “광장정치 기록 투쟁”을 전개한다. 그는 2025년에 목도한 사건은 ‘나중에’를 거부하는 ‘더 넓고 깊은 민주주의’를 위한 급진적인 투쟁이라고 정의한다. 정성조의 「퀴어 민주주의를 위하여」는 이번 탄핵광장에서 흔들리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퀴어’라는 피켓에 주목한다. ‘퀴어민주주의’란 한국사회에서 정치화된 동성애 혐오가 구성하는 적대적이고 극우적인 정치에 맞서 이전과는 다른 민주주의를 구성할 수 있는지,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마지막으로, 최성용의 글 「여순에서 남태령까지, 손가락총의 폭력을 넘어: 역사와 언어로 보는 12‧3 비상계엄과 내란 정국」은 12‧3 친위 쿠데타로 촉발된 후 지속되는 ‘내란의 장기화’를 현 정국의 핵심적 성격으로 제시하고 그 너머로 나아갈 가능성을 역사적 맥락과 계보 그리고 언어를 통해 탐색한 것이다. 여순사건을 통해 비상계엄의 역사적 계보를 그려내는 최성용은 예외상태에서의 폭력이 극도의 자의성과 임의성을 바탕으로 행사되며 이는 ‘빨갱이’와 ‘반국가세력’을 운운하는 언어로도 작동함을 제시한다.
동시대 분석
이서영의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돌아보는 ‘의료 대란’」은 한국의 시장주의적 의료체계가 일상적 계엄 상태에 처해 있다는 점에 주목할 것을 호소하는 글이다. 그는 ‘의대 증원’으로 대표되는 윤석열 정부의 ‘의료 개혁’이 실제로는 공공의료 죽이기 정책이었으며, 민영 보험사들에 대한 규제 완화를 통해 ‘미국식 의료 민영화’를 실현하려는 정책이 12‧3 계엄 이후에도 계속 추진되고 있음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차태서의 글 「복합 위기 국면과 미국의 세계: 트럼프 재선과 글로벌 질서의 퇴행」은 2024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에서 전통적인 계급 기반 정당 지지패턴이 변화하는 ‘정당 재편성’ 현상을 주목하여 이것이 구조적 복합 위기의 여파임을 구체적으로 규명한다. 또한, 세계 정치와 관련하여서는 탈근대 질서에서 근대 제국주의 질서로 ‘퇴행’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김성경의 「대북전단과 오물풍선」은 대북전단 살포와 오물풍선 ‘대응’이라는 남북한의 심리전을 통해 남북 갈등의 양상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탐색한 글이다. 접경지역 주민의 삶을 위기에 빠트린 남북 갈등 사태는 남한의 책임이 큰데, 평양에 무인기를 보내고 오물풍선을 원점 타격하려는 등 윤석열 정부가 남북 사이의 군사적 긴장을 의도적으로 고조시키려 했다는 사실이 12‧3 비상계엄 이후 드러났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재발견
천주희의 글 「멀리 가는 이야기로서 재난과 애도」는 서교인문사회연구실의 『재난 이후, 사회』를 다룬 것이다. 『재난 이후, 사회』는 다양한 이론적 언어로 재난을 이해하는 틀과 관점 그리고 재난 이후의 사회를 상상하기 위해 필요한 질문 및 정치를 제시한다. 강부원의 「노동하는 인간의 곁과 편」은 한승태 작가의 노동 3부작, 『퀴닝』, 『고기로 태어나서』, 『어떤 동사의 멸종』을 읽고 재구성하였다. 저자가 보는 한승태는 노동을 신성시하지도, 노동자의 정체성을 정치적 관념의 산물이나 이데올로기 투쟁의 도구로 취급하지 않는다. 박현선의 「글로벌 플랫폼 시대 한류의 동시간성: 문화자본과 내셔널리즘 사이에서」는 글로벌 플랫폼 시대에 한류가 처한 딜레마를 12명의 연구자가 성찰적으로 탐구한 『한류: 문화자본과 문화내셔널리즘의 형성』을 다시 비판적으로 독해한 것이다. 한류 담론에 대한 비판적 개입, 문화자본의 및 플랫폼 미디어와 한류의 관계, 문화 내셔널리즘의 딜레마, 그리고 한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아젠다를 중심으로 저자들의 글을 재배치하여 분석한다.
이론의 재구성
권범철은「세계에 다시 마법을 걸기」에서 근대의 합리화 과정에도 불구하고 잔존하는, 심지어 다시 요청되기까지 하는 마법의 의미를 살핀다. 그는 여러 인류학자들의 논의를 거쳐 마법이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비합리적인 믿음이라기보다 세계에 대한 공동체의 개입임을 강조한다.
이미지 큐레이팅
김상규‧심소미는 정운, 주용성, 황예지, 정택용, 네 명의 사진작가가 포착한 탄핵광장의 풍경을 큐레이팅했다. 정운의 사진은 2016년과 2024년 사이의 사태를 빛의 흐름으로 연결하고, 주용성의 사진은 권력과 이미지의 관계가 허물어지고 재조직되는 현장을 전하며, 황예지의 사진은 기록에서 유실되기 쉬운 허약한 세계에 빛을 비춘다. 마지막으로 정택용의 사진은 그날의 믿음과 신념을 잊지 않게 하며 또 다른 대항 행동을 약속한다.